여러분, 오늘은 제주 얘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5.16 도로, 아시죠. 제주 시내에서 서귀포 쪽으로 넘어가는 그 길. 한라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도로인데, 낮에 지나면 울창한 삼나무들이 양옆으로 쭉 늘어서서 꽤 근사해 보이기도 하죠. 근데 그 도로에 대해서 좀 묘한 얘기가 돌아요. 들은 얘긴데, 한번 들어보세요.
제 지인 중에 제주에 사는 분이 있어요. 한 오 년 전쯤, 그분이 밤 열한 시쯤 서귀포에서 일을 마치고 5.16 도로로 올라가고 있었대요. 평소에도 몇 번 지나던 길이라 딱히 긴장은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날따라 유독 안개가 깔려 있었대요. 헤드라이트가 닿는 데까지만 희뿌옇게 보이고, 그 너머는 그냥 검은 거죠.
올라가다 보면 중간쯤에 커브가 길게 이어지는 구간이 있거든요. 거기서 속도를 좀 줄이는데, 갑자기 차 안 온도가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대요. 히터를 켜고 있었는데도, 확실히 뭔가 차가운 게 목 뒤로 훅 들어오는 느낌. 에어컨을 잘못 건드렸나 싶어서 계기판을 봤는데 그게 아니었대요.
그리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에 사람이 걷고 있는 게 보였대요.
흰 옷 입은 남자였는데, 뒷모습이었대요. 걷는 속도가 이상했대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데, 걸음이 좀 끊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차가 가까워지는데도 돌아보지도 않고, 옆으로 비키지도 않고, 그냥 걸어가고 있었대요. 그분이 경적을 한 번 눌렀대요.
그 순간 그 사람이 멈췄대요.
멈추더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대요. 차 쪽으로.
근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대요. 헤드라이트가 정면으로 비추고 있는데도, 그 얼굴 부분만 그냥... 없는 것처럼 어두웠대요. 윤곽만 있고, 안이 없는 것처럼.
그분이 그때 뭔가에 홀린 것처럼 차를 세우려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서 액셀을 밟아버렸대요. 백미러로 봤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대요. 안개만 있고.
확실하진 않지만, 이 도로가 처음 놓일 때 공사 과정이 굉장히 거칠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이름도 없이 끌려 온 사람들이 많았고, 그 사람들 중 일부는 공사가 끝난 뒤에도 돌아가지 못했다는 얘기가 돌거든요.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정확하게는 모른다고.
그러니까 그 흰 옷 입은 남자가 누구였는지, 그분도 모르고, 저도 모르죠.
다만 그분이 그날 이후로 5.16 도로는 낮에만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밤에는 절대 안 간다고. 이유를 물으니까, 잠깐 말을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릴 때, 얼굴이 없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뭔가를 알아보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