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말이여, 아니 옛날은 무슨, 요 몇 해 전 얘긴데.
팔달산 있잖여, 거 수원 사람들은 다 아는 그 산. 거 꼭대기에 서장대라고, 기와 얹은 장수 누각이 하나 있거든. 낮에 가면 그냥 고즈넉하고 좋은 데여. 근디 해 넘어가면, 거 있던 사람들이 괜히 발걸음이 빨라진다고 허드라고. 뭐가 있는 건지는 몰라도, 그냥 오래 있기가 싫다고들 한대.
그래가지고, 들은 얘긴데, 어느 가을 밤이었다고 허드라고. 사십대쯤 됐나, 남자 하나가 거기 올라갔대. 술을 꽤 마신 채로. 혼자서. 뭔 사연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뭔가 단단히 맘이 상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하더라고.
처음엔 그냥 누각 기둥에 기대 앉아서 술 마셨겠지, 했지. 근디 그 사람이 나중에 한 말이 있는데, 거기서 뭘 봤다는 거여. 안에서 말이여. 서장대 안쪽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다고. 사람은 아닌데, 사람처럼 서 있는 게, 붉은 옷자락이 스윽 펄럭이더라는 거여. 바람도 없는 밤인데. 고요한데. 근디 그게 혼자 움직이더래.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뭐라 했냐면, 그게 자기를 봤대. 눈이 없는데 자기를 봤다는 거여. 고개를 돌리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알고 있더래. 니가 왔구나, 하는 것처럼. 그 순간 가슴이 꽉 막혔다고 허드라고. 소리를 지르려 했는데 목이 안 열리더래.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는데, 그때 코끝에서 냄새가 났대. 오래된 재 냄새. 나무 타고 남은 그 냄새가 아무 이유도 없이 훅 올라왔다고. 근데 그때 서장대는 멀쩡했거든,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그 뒤에 그 사람이 어떻게 된 거냐면, 자기 입고 있던 옷에다가 불을 붙였대. 옷에다가. 그러고 그 불이 번졌다고 허드라고. 나중에 잡혀서 한 말이, 홀렸다고. 그게 자꾸 불을 보여줬다고. 붉은 옷자락이 불처럼 흔들리면서 자꾸 뭔가를 시키더래.
근방에 오래 산 어르신한테 들은 얘긴데, 서장대 있던 자리가 원래 예사 자리가 아니라고 허드라고. 거기서 목숨 잃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여. 오랜 싸움에, 오랜 세월에. 그런 데가 조용할 리 없다고.
지금도 밤에 거기 올라간 사람들 중에, 바람 없는 날 바람 소리 들었다는 사람이 있대. 소리라기보다는, 숨 같은 거라고. 길고 느린 숨. 한숨인지 뭔지 모를 그게,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는데 귓바퀴 바로 옆에서 들린다고 하더라고.
그 남자는 그날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잘 모른대. 그냥 사라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어딘가 있다는 사람도 있고. 근디 이상한 건, 서장대 복원하고 나서도, 거기서 혼자 사진 찍으면 옷자락 같은 게 찍힌다는 소문이 가끔 돈다는 거여. 붉은 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