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늘은 남포동 구제시장에서 들은 얘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확실하진 않아요. 어디서 시작된 소문인지도 모르고. 근데 그쪽 골목에서 오래 장사한 분들한테 종종 들리는 이야긴데…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그냥 흘려듣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게 꽤 오래전 얘기래요. 고등학생쯤 됐을 여자애가, 친구 둘이랑 같이 그 시장 골목을 쏘다니고 있었다고 해요. 아시잖아요, 남포동 그 골목. 옷들이 행거에 빽빽하게 걸려 있고, 사람 몸 냄새랑 오래된 천 냄새가 섞여서 공기 자체가 묵직한 곳. 좁고 낮은 천장에 형광등이 깜박이고, 한쪽에선 주인 아저씨가 담배 피우고 있고.
그 애가 한 가게 안쪽에서 걸음을 멈췄대요. 다른 옷들 사이에 하나 걸려 있었는데, 딱 봐도 튀었다고 하더라고요. 보라색이라고 해야 하나, 먹물을 물에 탄 것 같은 색인데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달라 보이는 거래요. 대나무 잎이 그려져 있고, 기모노처럼 앞을 여미는 방식인데 원단이 얇고 길어서 로브 같기도 하고. 주변 옷들이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딘가 잘못 놓인 물건처럼 거기 있었다고 해요.
근데 그게 자꾸 눈에 걸렸다는 거죠. 친구들은 다른 걸 보고 있었는데, 자기만 그쪽으로 자꾸 시선이 간 거래요. 뭔가에 이끌린다는 느낌, 그런 거 있잖아요. 당시 학생한테 꽤 큰돈이었는데 그냥 샀다고 해요. 주인 아저씨가 가격 얘기할 때 눈을 잘 안 마주쳤다고 하더라고. 확실하진 않지만.
집에 와서 정성껏 손빨래를 했대요. 그리고 베란다에 널었다고 하는데.
그날 밤부터 조금씩 이상했다고 해요.
며칠 뒤 저녁에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베란다 창문이 다 닫혀 있었대요. 분명 널어놓을 때 열어뒀는데. 그리고 거실 선풍기가 켜져 있었다고 해요. 동생 불렀더니 동생은 방에서 책 읽고 있었다고 했고, 엄마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고.
그냥 넘겼대요. 처음엔.
근데 그 옷을 입고 자는 날이 문제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날그날은 꼭 가위에 눌렸다는 거예요. 근데 단순히 몸이 안 움직이는 게 아니라,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상태에서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거래요.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이 항상 똑같았대요. 베란다 쪽.
그러다가 한번은, 잠결에 눈을 떴는데.
그 옷이 베란다에 걸린 채로 창문 쪽을 향해 있었대요. 분명 안쪽으로 걸어뒀는데. 바람이 없었다고 해요. 창문도 닫혀 있었고.
그 애가 그 상태로 한참을 못 움직였대요. 소리도 못 지르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는데, 발이 차가운 정도가 아니라 발목 아래가 없는 것처럼 감각이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두려운 게 아니라, 그 옷이 자기를 알고 있다는 느낌. 처음 걸려 있던 그 가게에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
다음 날 바로 버렸다고 해요. 어디에 어떻게 버렸는지는 말 안 했다고 하더라고.
들은 얘긴데, 그 뒤로 그 애는 중고 물건을 일절 사지 않게 됐대요. 옷은 물론이고, 책도, 그릇도. 이유를 물어보면 딱 한마디만 했다고 해요.
누군가 입던 건 그 사람이 아직 안 떠난 거라고.
남포동 그 골목은 지금도 있어요. 행거에 옷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고, 사람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고. 여러분이 거기서 유독 눈에 걸리는 옷을 발견하게 된다면… 뭐, 그냥 그냥 지나치셔도 될 것 같아요. 굳이 손 뻗을 필요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