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용(處容)의 탈
처용 / チョヨン
역신조차 물러서게 만든 그 얼굴이, 지금도 문 위에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신라 헌강왕 치세, 개운포의 안개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자가 있었다. 용왕의 아들이라 자칭하며 노래하고 춤추다 왕을 따라 서라벌까지 들어온 그 존재. 벼슬을 받고 달밤마다 거리를 떠돌던 그는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인간이었는지조차 확인된 바 없다.
어느 달밤, 처용이 돌아왔을 때 침상에는 아내와 역신이 함께 있었다.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바로 〈처용가〉다. 분노도 저주도 없는 그 목소리에 오히려 역신이 질려 물러났다고 전해진다. 두려움을 삼켜 노래로 만드는 것, 그것이 처용의 진짜 주술이었다.
고려 이래로 새해 첫날이나 역병이 돌 때 처용의 얼굴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이는 풍습이 퍼졌다. 그 탈의 생김새는 사람이라 하기엔 어딘가 어긋나 있다. 눈이 너무 크고, 웃음이 너무 넓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위협처럼 느껴진다.
처용무(處容舞)는 궁중 의례로 계승되었으나, 그 춤의 원형이 무엇을 모방한 것인지는 기록마다 엇갈린다. 울산 개운포가 당대 국제 무역항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처용의 이목구비가 당시 신라인의 것과 달랐다는 암시가 설화 곳곳에 남아 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처용의 탈을 함부로 뒤집어 놓거나 훼손하면 안 된다는 말이 전해진다. 역신을 물리치는 것과 역신을 부르는 것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오래된 무속인들은 낮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출처: 처용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본 사이트가 각색·재구성. 라이선스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