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가사리
bul-ga-sa-ri
죽일 수 없는 것이 배를 곯으며 당신의 문 앞에 서 있다면, 그것이 남긴 흔적은 녹슨 빈 공간뿐이다.
곰의 육중한 몸통, 코끼리의 구불구불한 코, 소의 흰 눈, 호랑이의 발톱—그리고 온몸을 뒤덮은 바늘 같은 털. 불가사리는 어느 한 짐승의 형상이 아니라, 여러 두려움이 한 몸에 봉합된 존재다. 그 이름 자체가 선고다. '불가살(不可殺)'—죽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
이 괴이는 쇠를 먹는다. 못 하나, 솥 하나, 칼 한 자루. 먹을수록 몸집이 불어나고, 배를 채울수록 더 큰 쇠를 원한다. 굶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더 격렬하게 찾아다닐 뿐이다.
고려 말 개성의 어느 골목에서 소문이 흘러나왔다. 한 여인이 밥풀로 빚어 방구석에 세워 둔 작은 형상이 어느 날 밤 스스로 움직였다고. 처음에는 바늘을 먹었고, 그다음은 농기구, 그다음은 성문의 쇠빗장이었다. 형상은 커졌고, 이미 그 무렵엔 어떤 무기도 가죽에 닿지 못했다.
칼도, 화살도, 창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은 달랐다. 불가사리는 불길 앞에서 물러선다고 전해진다—죽는 것이 아니라, 물러서는 것. 이 차이는 작지 않다.
한편으로 불가사리는 벽사(辟邪)의 존재이기도 했다. 악몽을 씹어 삼키고, 재앙의 기운을 먹어 치운다는 믿음. 민가의 문설주에 그 형상을 새긴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이 무언가를 같은 편으로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오래된 마을 창고에서 쇠붙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있다고 한다. 도둑의 소행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라진 것들 주변에 남는 건—바늘 굵기의 털 한 올이다.
출처: 불가사리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본 사이트가 각색·재구성. 라이선스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