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무기 (螭龍)
이무기 / I-mu-gi
천 년을 기다린 것이 용이 되지 못했을 때, 그 원한은 강바닥보다 깊다.
차가운 강 밑, 혹은 깊은 못 속에서 천 년을 웅크린 채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 용이 되기 위한 긴 수련의 끝에 여의주를 얻어 폭풍우와 굉음을 일으키며 하늘로 오르는 것이 이무기의 유일한 염원이라 전해진다. 그러나 승천의 순간 단 한 사람의 눈과 마주치는 것만으로, 그 모든 기다림은 물거품이 된다.
이무기는 이시미, 미리, 영노, 강철이(强鐵), 훼룡(虺龍) 등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려 왔다. 이름이 다양하다는 것은 목격담 또한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마다의 강과 연못에, 저마다의 이무기가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충청남도 병천의 백전 마을에는 아홉 살 소년이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로 이무기를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 입구의 거북 바위(龜岩) 곁에 서면 지금도 그날의 사사처(射蛇處)를 가리키는 전설이 바위에 새겨진 글자처럼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는 그 원한을 세상에 돌린다고 한다. '용 못 된 이무기'라는 속담이 심술궂고 인정 없는 자를 가리키는 데 쓰이는 것은, 오랜 좌절이 얼마나 깊은 독이 되는지를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에도 갑작스러운 홍수나 강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울음소리를 두고, 승천에 실패한 이무기의 분노라 수군거리는 이들이 있다. 강가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물속에서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다면, 결코 그쪽을 오래 바라보지 말 것. 목격된 이무기는 하늘을 잃고, 당신을 기억한다.
출처: 이무기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본 사이트가 각색·재구성. 라이선스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