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상시 탈 (方相氏 탈)
방상시 탈
네 개의 눈이 뚫리지 않은 채로도, 그것은 보고 있다.
소나무를 깎아 만든 이 탈은 가로세로 70센티미터를 넘는 거대한 얼굴이다. 웃는 듯한 입매, 깊이 파인 주름, 양쪽으로 크게 솟은 귀. 한때 눈썹에는 녹색과 붉은색이 선명했다 하나, 지금은 모두 바랜 나무 빛으로 돌아갔다. 긴 세월이 색을 지웠는지, 아니면 색이 스스로 물러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방상시(方相氏)는 궁중 의례에서 악귀를 몰아내는 역을 맡은 존재다. 붉은 옷을 걸친 네 명이 이 탈을 쓰고 행렬 앞에 섰으며, 불과 색채와 소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협했다. 임금의 행차, 사신의 영접, 그리고 죽은 자의 마지막 길—모두 방상시가 먼저 걸어 열었다.
장례 행렬에서 방상시는 가장 앞줄에 서서 길을 텄다. 묘지에 닿으면 시신이 누울 자리를 향해 창을 내리쳤고, 그렇게 땅속의 잡귀를 몰아낸 뒤에야 관이 내려졌다. 쓰임이 끝난 탈은 시신과 함께 묻히거나 불에 태워졌다. 한 번 쓴 탈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그런데 1970년, 창덕궁 창고 깊숙이 장례 용구들 사이에서 이 탈이 발견되었다. 묻히지도, 태워지지도 않은 채. 네 개의 눈구멍은 뚫려 있지 않다—사람이 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벽에 걸어 귀신을 응시하게 했던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탈이 귀신을 쫓는 것인지, 아니면 탈 자체가 귀신을 붙들어 두는 것인지, 기록은 구분하지 않는다.
주(周)나라 의례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고, 신라 5~6세기 장례에서도 흔적이 보이며, 고려 정종 6년(1040년)부터 조선 말까지 이어졌다.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시대 방상시 탈이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어딘가에 있다고 전해지나, 그 네 눈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한 사람은 없다.
출처: 방상시 탈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본 사이트가 각색·재구성. 라이선스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