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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 (志鬼)

지귀

사랑이 식지 않아서, 그는 아직도 타고 있다.

신라 시대의 기록 『삼국유사』 한 귀퉁이에 이름이 남아 있다. 지귀(志鬼) — 뜻을 품은 귀신, 혹은 뜻이 귀신이 된 사내. 살아생전 그는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선덕여왕을 향한 그리움이 너무 깊어 몸이 먼저 꺼졌다.

여왕이 영묘사(靈廟寺)를 찾는다는 소문을 듣고 탑 아래서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여왕은 잠든 그를 깨우지 않고 손목의 팔찌를 가만히 가슴 위에 얹어 두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잠에서 깨어 여왕의 온기가 배인 금속을 손에 쥔 순간, 그리움은 감당할 수 없는 열로 변했다. 심장 안쪽에서 불꽃이 피어올랐고, 살갗을 뚫고 나온 불은 그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지귀가 된 불덩이는 탑을 핥고, 저잣거리를 훑고, 담장과 서까래를 재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문설주에 주문을 써 붙여야만 그 불길을 문 앞에서 돌려세울 수 있었다고 전한다. 욕망이 아니라 순정이 세상을 태웠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차가운 부분이다.

소문은 지금도 간헐적으로 떠돈다. 이유 없이 집 안 한 귀퉁이가 뜨거워진다거나,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물건에서 그을음 냄새가 난다거나. 목격담에는 공통점이 있다 — 그 열기에는 슬픔 같은 것이 섞여 있어서, 손을 뻗어 만지고 싶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손을 뻗은 사람은 다음 날 아침 손바닥에 작은 화상 자국을 발견한다.

지귀는 분노해서 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 기다림이 너무 오래되어, 주변의 공기마저 견디지 못하고 불이 붙을 뿐이다.

타오르는 집착, 슬픔의 열기, 재가 된 그리움, 고요한 화재 신라삼국유사화귀불귀신상사병선덕여왕민간신앙한국 전래 괴이
Kaidan 괴이 도감 소문 속 존재들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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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귀 (志鬼)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본 사이트가 각색·재구성. 라이선스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