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룡산 (鷄龍山)
계룡산
닭의 볏을 쓴 용이 깃든 산에서는, 산이 먼저 사람을 알아본다고 한다.
충청남도의 심장부에 솟은 이 산은 천왕봉·연천봉·삼불봉을 잇는 능선이 닭의 볏을 두른 용의 형상을 이룬다 하여 계룡(鷄龍)이라 불린다. 백제 시대에는 계람산(鷄籃山)이라 적혔고, 당나라의 문헌에도 그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름이 문자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것을, 산을 찾은 이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통일신라는 이 산을 오악(五嶽) 중 하나로 모셨고, 국가 제사를 올렸다. 그 제의는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면면히 이어졌으며, 지금도 신원사의 중악단(中嶽壇)에는 그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전한다. 제사가 끊기지 않았다는 것은, 무언가가 여전히 응답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 남쪽의 신도안(新都內)은 조선 개국 직전 새 도읍 후보지로 거론된 땅이다. 풍수가들은 이곳을 정씨(鄭氏) 왕조가 일어날 땅이라 읽었고, 그 믿음은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신흥 종교와 기도처를 이 산자락으로 불러 모았다. 지금도 계룡산 일대에는 그 흔적들이 안개처럼 남아 있다.
출입이 금지된 천왕봉과 쌀개봉에 대해 산 아래 주민들은 말을 아낀다. 공식적인 이유는 군사 시설이지만, 오래된 입소문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속삭인다. 금지된 곳에 올랐다가 방향감각을 잃고 내려온 이들의 이야기가 드문드문 전해진다.
동학사, 갑사, 신원사가 산의 세 방향을 지키듯 들어선 배치는 우연이 아니라는 시각이 있다. 절이 산을 품은 것인지, 산이 절을 붙잡아 둔 것인지—이 물음에 답하는 승려는 없다.
출처: 계룡산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본 사이트가 각색·재구성. 라이선스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