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智異山)
지리산
어리석은 자가 들어가면 지혜로워진다 했지만, 돌아오지 않은 자들은 끝내 말이 없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서 세 개의 도, 다섯 개의 시군에 걸쳐 몸을 펼친 산. 천왕봉·반야봉·노고단, 세 봉우리를 축으로 스무 개 남짓의 능선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사이로 헤아릴 수 없는 계곡이 숨어 있다. 산의 둘레만 320킬로미터. 들어선 자가 제 발로 나오지 못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깊이다.
예로부터 이 산은 영산(靈山)으로 불렸다. 신령이 머문다 여겨 고찰이 들어섰고, 기도처가 생겨났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지리산은 언제나 쫓긴 자들의 땅이었다는 사실이다. 마한의 왕이 난을 피해 달궁 계곡에 도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그 뒤로도 의병, 동학군, 빨치산이 차례로 이 산의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산이 품은 것은 지혜만이 아니었다.
달궁 계곡 일대에는 역사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지명들이 구전으로 흘러 내려온다. 두 장수의 이름을 딴 고갯길, 왕이 쌓았다는 성터의 윤곽. 학계는 정설로 인정하지 않지만, 현지 주민들은 여전히 그 이름들을 입에 올리기를 꺼린다. 말로 부르면 무언가가 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산 이름의 유래조차 불분명하다. '어리석은 이가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해석은 후대에 붙인 것이고, 실제로는 아무도 뜻을 모르는 순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 여겨진다. 이름의 뿌리가 지워진 산. 그 공백 속에 무엇이 채워졌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등산객들 사이에는 지금도 조심스러운 말이 돈다. 안개가 짙은 날 능선에서 길을 잃으면, 앞서 걷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다고. 따라가면 길이 나오기도 하고,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그 발소리의 주인이 무엇인지, 돌아온 자들도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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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리산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본 사이트가 각색·재구성. 라이선스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