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이 (強鐵)
강철이
풍년을 빌던 논두렁에 갑자기 타들어 가는 냄새가 번지면, 마을 어른들은 입을 다물고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조선 중기 이후 한반도 전역의 농촌 소문 속에 뿌리내린 존재. 지역에 따라 '강철', '깡철', '꽝철'로도 불리며, 그 이름이 조금씩 달라도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경고는 어디서나 같았다.
1614년 이수광이 《지봉유설》에 기록한 당대 속담이 있다. '강철이 지나간 자리는 가을도 봄 같다.' 시골 노인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수 리 안의 초목을 모조리 말려 죽이는 괴물 이야기가 돌아왔다. 이수광은 《산해경》의 괴물 비(蜚)와 견주었지만, 그 실체는 끝내 문자 속에 가두어지지 않았다.
학자마다 그 성질을 달리 전했다. 이익은 호우로 농사를 망치는 독룡과 같다 했고, 김이만은 온몸에 황색 털이 난 짐승이라 적었으며, 이덕무는 김포의 늪에 숨어 사는 망아지 형상이라 기록했다. 신돈복은 계룡산과 철원에서 목격되었으며 우박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가뭄을 부른다는 말과 폭우를 부른다는 말이 같은 시대에 엇갈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 존재가 특정 재해가 아니라 '농사를 죽이는 모든 것'의 형체임을 암시한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청나라 사람과 필담을 나누다 화룡·응룡·한발 이야기가 나오자 조선에서는 그것들을 강철(罡鐵)이라 부른다고 답했다. 그 한 줄이 말해 주는 것이 있다. 강철이는 어느 한 나라의 문헌에서 빌려온 이름이 아니라, 농민들 사이에서 스스로 태어난 소문이었다는 것.
1957년 8월 《동아일보》에도 강철 목격담이 실렸다. 활자 속 증언은 짧고 건조했으나, 그것이 실린 날짜가 한여름 한복판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어딘가 서늘하다. 소문은 문헌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출처: 강철이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본 사이트가 각색·재구성. 라이선스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