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말이여… 아니, 옛날도 아니여. 요 몇 년 사이에 떠도는 얘긴데, 들은 사람마다 말이 조금씩 달라서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한번 들어봐.
낙산공원 있잖여. 서울 한복판에 있는 그 공원. 성벽 따라 올라가면 벤치가 몇 개 있는 데 있잖아, 가로등 불빛도 잘 안 닿는 저쪽 구석. 거기서 일이 생겼다고 한대.
이십대 중반쯤 된 남자였다고 허드라. 이름은 모르고, 그냥 혼자 살던 청년이었다고만 들었어. 어느 가을 밤에, 술을 좀 걸쳤는지 그냥 피곤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벤치에 앉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는 거여. 바람 소리도 있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들렸을 그 밤에.
그래가지고… 한참 뒤에 눈을 떴는데.
손에 뭔가 구겨진 게 쥐어져 있더래. 처음엔 그냥 낙엽인 줄 알았다고 허드라. 근데 펼쳐봤더니 종이였어. 작은 쪽지. 글씨가 적혀 있는데, 붉은 색으로 — 볼펜이나 사인펜 같은 게 아니라, 뭔가 번지고 울퉁불퉁하게 긁어 쓴 것 같은 글씨로 — 이렇게 적혀 있었대.
*다음엔 내 얼굴을 가져갈게.*
그 남자가 얼마나 놀랐겠어. 사람 없는 공원 벤치에서 혼자 잠들었는데 손에 쪽지가 쥐어져 있으니. 그래가지고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봤는데 아무도 없더래. 성벽 그림자만 길게 드리워져 있고, 가로등 아래 낙엽만 굴러다니고.
집에 달려와서 화장실 불 켰는데… 거울을 봤더니. 자기 얼굴이 하얬대. 그냥 창백한 게 아니라, 핏기가 쭉 빠진 것이 마치 사진 속에서 죽은 사람 얼굴 같았다는 거여. 근데 더 소름 돋는 건 — 이를 보니까 뭔가 붉은 게 묻어 있더라는 거여. 핏자국 같은 거. 근데 그 남자는 자기가 뭘 먹은 기억이 없대. 잠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그래서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허드라.
그날부터였대. 매일 밤 같은 꿈을 꿨다는 거여.
낙산공원이야. 꿈속에서도 그 공원이여. 근데 낮이 아니라, 불도 꺼지고 달도 없는 새까만 밤. 성벽 길을 혼자 걷고 있으면, 저 끝에서 뭔가 다가온다는 거여. 여자인데 — 하얀 옷을 입은 여자인데 — 목이 없대. 그냥 어깨 위로 아무것도 없는 거여. 근데 그게 걸어오는 거야. 팔을 앞으로 내밀면서, 천천히. 뛰지도 않아. 그냥 느릿느릿 걸어오는데, 그게 더 무섭다고 허드라. 소리도 안 나. 발소리도, 옷깃 스치는 소리도. 그냥 쥐 죽은 듯 조용한데, 그 여자만 다가오는 거여.
그 남자가 꿈에서 깨면 — 언제나 손에 쪽지가 있더래. 또 그 붉은 글씨로.
*이제 곧 네가 날 대신할 차례야.*
그래가지고… 그 남자가 어떻게 됐냐고? 그건 나도 몰러. 얘기해준 사람도 거기서 끊겼어. 어디서 들은 거냐고 물어봤더니, 낙산공원 근처에 사는 누가 그러더라는 거여.
근데 말이여…
그 쪽지들, 남자가 버리려고 했다는 거여. 매일 아침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이튿날 아침에 보면 또 손 안에 있더래. 구겨진 채로. 꼭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