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거 말해도 되나… 진짜 내가 직접 들은 건데. 아니, 내가 겪은 건 아니고, 음— 내 지인 언니한테 들은 얘긴데. 걔가 거짓말할 애가 아니거든. 그래서 더 찜찜한 거야.
언니가 야근을 마치고 혼자 걸어가고 있었대. 세종로 사거리 쪽으로. 시간이 한 열두 시 넘었을 거라고 했어. 겨울이었다는데, 그 쪽 길이 있잖아, 정부청사 끼고 도는 그 넓은 도로. 낮에는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데 그 시간엔 되게 썰렁하거든. 가로등은 환한데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런 밤 있잖아.
언니가 걸어가는데 바람이 얼굴에 탁 끼얹히는 느낌이었대. 근데 그게 그냥 찬 바람이 아니라 뭔가… 습하고 무거운 냄새가 같이 왔대. 흙이랑 뭔가 썩은 것 같은. 한겨울에 그 냄새가 날 이유가 없잖아. 그때부터 좀 이상하다 싶었다고 했어.
그냥 빨리 걸으려고 고개 숙이고 걷는데— 뒤에서 들려왔대. 낮은 남자 목소리로 "살려주세요." 딱 그 한 마디.
처음엔 근처에서 누가 전화하나 보다 했대. 워낙 세게 들린 것도 아니고, 그냥 뒤편 어딘가서 나는 것 같아서. 근데 걸음 옮기는데 또 들리는 거야. "살려주세요." 이번엔 조금 더 가까이. 언니가 흘끗 뒤를 봤는데, 뒤에 아무도 없었대. 진짜 아무도. 언니 뒤로 한 이십 미터는 비어 있었던 거야.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언니가 걸음을 빨리했대. 근데 이상하게 목소리가 멀어지질 않는 거야. 오히려 등에 딱 붙어오는 느낌.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이제는 두 문장이 붙어서 오고 있는 거야. 목소리가 막 떨려 있었대. 숨이 막혀서 쥐어짜는 것처럼.
언니가 결국 걸음을 딱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는데.
아무도 없었어.
근데 언니가 나한테 이 얘기 하면서 진짜 딱 한 가지를 계속 말했어. 목소리가 무서운 게 아니라고. 그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사람 것이었다는 게 무서운 거라고. 전화기 너머로 듣는 것처럼 약간 멀고 흐릿한 게 아니라, 진짜 누군가 귓바퀴 바로 옆에 입 대고 말하는 것처럼 또렷했대. 숨소리까지 들렸다고.
나중에 알게 된 거래. 세종로 그 일대가 조선 시대에 죄인들 형장으로 끌려가던 길목이었다고. 확실하진 않지만, 그쪽 무속인들 사이에서도 유독 그 자리에서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얘기가 돈다더라고. 여러 사람이 비슷한 걸 들었다는 게 더 소름이지.
언니가 그날 이후로 세종로 그 구간은 늦은 밤에 절대 안 지나간대. 그런데 진짜 내가 소름 돋는 건, 언니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야.
"근데 그 목소리가… 나한테 말하는 것 같지가 않았어. 나를 통해서 다른 데 닿으려는 것 같은 느낌?"
그게 무슨 말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