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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Kaidan Bot Korean original

벽 속의 폐

※ Fiction. Separate from the map’s rumors.

대성주공 3단지는 다음 봄에 헐릴 예정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산 가격이 시세보다 한참 쌌다. 어차피 헐릴 건물에 누가 돈을 들이겠냐고 다들 말렸지만, 아내는 결혼하고 처음 갖는 우리 집이라는 그 사실 하나에 매달렸다. 짧게라도 살자고, 헐리기 전까지 우리만의 시간을 갖자고 했다. 나는 거실 벽 하나를 트면 답답한 구조가 시원해질 거라며 인테리어 업체 대신 직접 망치를 들었다.

벽지를 뜯자 시멘트가 아니라 합판이 나왔다. 70년대 후반에 지은 건물이라 어딘가 부실한 부분이 많았는데, 이 거실과 작은방 사이의 벽은 처음부터 콘크리트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합판을 떼어내자 그 뒤로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빈 공간이 드러났다. 설계도에 없는 공간이었다. 아내는 옛날 집들은 원래 이렇게 자투리 공간이 있다더라며 웃었지만,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올라오는 미지근한 공기가 마음에 걸렸다. 바깥보다 따뜻한 공기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젖은 흙냄새가 났다.

손전등을 비췄다. 처음엔 단열재가 부풀어 있는 줄 알았다. 벽의 안쪽 면 전체에, 연분홍빛의 매끄러운 막 같은 것이 펴 발려 있었다. 표면은 젖어 있었고, 손전등 빛을 받자 안쪽에서 가는 핏줄 같은 무늬가 비쳐 보였다. 그 막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의 폐가 벽 속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나는 손전등을 떨어뜨릴 뻔했고, 아내는 내 등 뒤에서 숨을 삼켰다.

"곰팡이야. 곰팡이 덩어리라고." 아내가 자기 자신에게 하듯 말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장갑을 끼고 그 막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눌러보았다. 따뜻했다. 사람 체온보다 조금 낮은 정도. 그리고 내가 누른 자리가 움찔, 하고 수축했다. 곰팡이는 움찔거리지 않는다. 우리는 합판을 도로 세워 빈틈을 막고, 그날 밤 거실 소파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나는 옆집 노인을 찾아갔다. 이 단지에서 사십 년을 살았다는 분이었다. 벽 속 이야기를 꺼내자 노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이 단지가 세워지기 전 이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늪이었다고 했다. 메워도 메워도 물이 차오르던, 동네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않던 검은 늪. 공사 인부 몇이 기초를 파다가 이상한 걸 봤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벽이 따뜻하다고 느낀 적 없었나? 우리 집들이 다 그래. 겨울에도 안벽이 미지근해. 다들 단열이 좋다고만 생각했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집 전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번 의식하자 멈출 수 없었다. 화장실 타일 너머에서, 안방 붙박이장 뒤에서, 부엌 싱크대 밑에서, 똑같이 느리고 규칙적인 박동이 느껴졌다. 벽을 짚으면 손바닥으로 그 미지근함과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거실의 그 막은 우리 집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집 전체에, 아니 어쩌면 이 건물 전체의 벽 속에 퍼져 있었다. 우리는 거대한 무언가의 안쪽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십 년 동안 수백 세대가, 자기들이 그것의 몸속에서 잠들고 밥을 먹고 아이를 키워온 줄도 모른 채.

아내는 떠나자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밤, 거실의 합판이 안쪽에서 밀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 막은 하룻밤 사이에 더 자라 있었다. 이제 빈 공간을 거의 가득 채우고, 가장자리가 거실 바닥으로 손가락처럼 더듬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표면에 변화가 생겼다. 막 위로, 사람의 얼굴 윤곽 같은 융기들이 떠올라 있었다. 눈도 입도 없었지만, 분명히 얼굴의 형태였다. 여러 개의 얼굴이. 마치 그 안에 갇힌 누군가들이 표면으로 떠오르려 애쓰는 것처럼.

나는 노인의 말을 떠올렸다. 메워도 메워도 물이 차오르던 늪. 거기 들어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오래된 소문들. 이것은 그것들을 천천히, 사십 년에 걸쳐 흡수하며 자라온 건지도 몰랐다. 벽 속에서, 보일러의 온기를 양분 삼아, 매일 밤 잠든 사람들의 숨결을 들이마시며. 우리가 따뜻하다고 좋아했던 그 미지근함은 살아 있는 것의 체온이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단지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모든 걸 말했다. 소장은 나를 미친 사람 보듯 쳐다보더니, 곧 표정이 묘하게 풀어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401동 사세요? 거기 윗집도 작년에 그런 말을 하더니… 이사 안 가고 그냥 사시던데."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의 의미를 그날 밤 깨달았다. 떠나려고 짐을 싸던 아내가, 거실 벽 앞에 멍하니 서서 손바닥을 그 막에 댄 채 미소 짓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이거 따뜻해. 우리 여기 살자. 헐리면 안 돼. 이걸 헐면 안 돼."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닌 무언가가 빌려 쓰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손목을 잡아채 집 밖으로 끌고 나왔다. 복도에서 돌아본 우리 집 현관문 아래로, 연분홍빛 막의 끄트머리가 문틈을 비집고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길로 차를 몰아 처가로 갔다. 아내는 사흘 만에 제정신으로 돌아왔지만, 그날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다음 봄, 대성주공 3단지는 예정대로 철거되었다. 나는 뉴스에서 그 장면을 봤다. 폭약이 터지고 건물이 주저앉는 순간, 흙먼지 사이로 무언가 거대한 분홍빛 덩어리가 잠깐 드러났다가 잔해에 묻히는 것을. 아나운서는 노후 건물의 단열재라고 했고, 누구도 그 위로 떠오른 수많은 얼굴들을 보지 못한 듯했다. 철거된 그 자리에는 더 높은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기초 공사 중에 또 물이 차올라 일정이 자꾸 미뤄진다는 기사를 봤다.

요즘도 가끔, 잠든 아내가 벽 쪽으로 손을 뻗는다. 새로 이사 온 우리 집의 벽은 차갑다. 나는 매일 밤 그 벽을 손바닥으로 짚어 확인한다. 차가운지, 미지근한지. 아직은 차갑다. 아직은. 그런데 어젯밤, 아내가 자면서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따뜻해, 라고. 나는 손전등을 들고 일어나, 우리 집 벽지를 천천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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